전체 상황: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민족 모두가 일제치하에서 기독인(신,구교)이 아니었고 2010년 지금도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할 부분은 기독인들에게 한하여 적용되지만, 그들도 한민족의 일원이기에 한반도에 사는 기독인들 때문에 이 민족의 비기독인들이 덤터기로 악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그리고 일어나는 한민족에게 미치는 사건에는 기독인의 참 신 여호와가 그를 신봉하는 기독인들에 내린 징계와 관계가 있다. 따라서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38도선 및 휴전선이북에서 일어난, 그리고 계속 일어 날 참상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1945년 광복이전에 살던 기독인들의 불순종에 대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북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 해결 또한 당연히 오늘날 한민족 기독후손들이 그 신봉하는 여호와 신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할 관건이다.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김정일문제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1. 우리 기독인의 여호와가 참 신이라면, 정경에 의거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한해서는 순종,불순종에 따라 채찍과 보상이 은혜 안에서 반드시 따른다. 천지가 사라 질 지라도 이런 법칙은 영원하다.
2. 38도선 이북에서 1938년 당시의 개신교 기독인은 극히 소수에 불과한 30만을 겨우 넘어섰다. 그 당시에는 이들이 한반도 전체 기독인들의 중심이었고, 평양은 산정현교회를 위시하여 그 핵심도시였다.
3. 한반도를 무력으로 강점한 일제가 자신들이 벌인 만주사변 (1930년)을 기화로 유발시킨 중일전쟁의(1937) 승리를 위해서 요구한 악랄한 정신지배, 통일정책이 곧 한민족 모두에게 강요한 “신사참배”였다.
4. 한반도 곳곳에 세워진 신사에 소위 황국민으로 찾아가서 절하여야 하는 천황숭배주의를 요구한 것이었다. 일본역대 천황들의 영과 전쟁에서 죽은 국가 유공자의 영과 태양신을 모신 곳인 신사에 한민족 기독인(신,구교)들도 머리 숙여 절하라고 강요한 것이었다.
5. 1938년 2월에서 9월 사이 정점에 달한 신사참배강요는 마침내 그 해 9월9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장로회 제 27차 총회에서 완전한 결실을 맺었다. 총회 당일에 전국의 23개 노회에서 모인 대표(총대)들이 총독부의 지시에 따라 방문한 수 백명의 일경과 백명의 무술경관들과 함께 회의석에 앉았다. 그리고 평남 경찰부장 및 고위경찰간부들의 감시하에 만장일치 구두 가결로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일제 태양신에게 ” 절하는 안을 가결한 것이다”. 장로교회가 모든 공적 기독인 기관 및 교단들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6. 우리 기독인의 정경에 따르면, 이러한 교회의 신사참배 결정은 명백한 배교행위이다 (출 20:3-6; 신 5:7-10). 그리고 기독인의 참신 여호와는 이러한 배교행위에 대한 응징을 정경에 명시하고 확약했다. 유대인들의 70년 바벨론 유수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기원전 605-534).
7. 물론 신사참배를 반대한 기독인들이 분명 존재했다. 어떤 이들은 그 목숨까지 바쳤다. 하지만, 한민족 기독인들이 전체적으로 이 배교행위를 반성하고, 여호와신에게 참회한 행위는 2010년 1월9일 오늘날까지 1938년 9월9일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1950년 겨울 6.25 당시 부산으로 쫓겨 온 모든 기독인들이 참회하자고 기도모임을 가졌으나, 장로 교단의 분리를 부채질한 교만의 결말을 맺었을 뿐이다. 2007년 개신교인 기독교 장로교단이 평양부흥 100주년 기념해서 부활절을 기화로 이 참회운동을 시작했으나, 역시나 용두사미였다.
8. 참된 신에게는 완전한 참회없이는 용서 또한 없다. 다행히도 예수 안에서 선물로 내려 온 죄용서함을 기독인들은 받았다. 그 후에 일어 난 배교횅위에 대해서는 은혜의 참신이기에, 그 은혜 안에서 가해지는 채찍이 너무나도 가혹하다. 죄용서 받은 기독인들이기에, 그 사랑을 받은 자들의 배교행위에 여호와가 드는 사랑의 채찍이 너무나도 가혹하다. 영원한 징벌이 아니라, 한시적인 징책이지만, 그 참상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9. 그 참상은 두 가지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지난 65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날마다 일어 나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괴뢰가 자행한 기독인 말살 행위가 그 첫째요. 바벨론 유수의 비참한 삶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모르고 복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대한민국내, 이민 간 모든 기독인들의 비.정.상.적인 삶과 그 모임인 교회의 실태가 그 둘째이다. 모든 한민족 비기독인들의, 특히 “모난 놈 옆에 있다가 정맞은” 고통받는 북한의 비기독인 동포들의 지탄을 죽을 때까지 받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10. 특히 대한민국 내와 이민간 한민족 기독인들과 그 교회들이 자신들의 처한 처지를 전.혀 모르고 설치는 이 상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계선교니, 교회부흥이니 등등으로 국내외 비기독인 동포들에게 지탄받을 만한 일들만을 골라 가면서 하고 있기에, 여호와의 채찍이 아직도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11. 기독인들이 왜 이런 처지에 있는 지를 모르고, 마치 복받은 것처럼, 부흥한 것처럼 착각하도록 방치한 여호와의 채찍이 너무나도 무섭다. 자유세계에 있는 한민족 기독인들과 그 교회가 휴전선 이북의 고통받는 기독인들은 물론이요, 일반 동포, 그리고 탈북동포들의 고통에 일차적인 책임을 가진, 또 그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후손이란 사실을 자각하길 위해 기도한다.
12. 모든 한민족 기독인들이 신사참배에 대한 조상의 배교행위를 참회하는 때가 오기 전까지, 여호와의 채찍이 게속 머무를 것이다. 바벨론 유수 69년만에 가서야 정경에서 명시되고 확약한 이런 배교행위에 대한 징계를 거두어 달라고 21일 동안 금식하며 참회한 유대인이 있었다 (단 9장). 바벨론과 메데-페르시아의 총리였던 다니엘 선지자는 그 기도를 한 후에 1년 만에 포로생활을 청산하는 용서를 정경에 명시하고 약속한 대로 그 민족에게 받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 정경에 명시한 유수가 시작되기도 전에 예언으로 선언된 포로기간은 70년 이었지만, 한민족의 남북한, 그리고 이민간 모든 기독인들에 내린 포로기간이 얼마가 될 지를 모르겠다.
13. 주변 강대국들은 단지 여호와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한민족 기독인들에 대한 채찍과 용서의 수단일 뿐이다. 이처럼 확고한 정경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참된 회개를 시작하기가 요원하리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해결책:
여호와의 채찍은 사랑의 매이며, 깨달으라고 내린 것이다. 멋 모르고 고통 속에 채찍인지도 모르고, 고통받고 있음도 모르며 살다가 죽으라고 준 것이 아니다. 선교, 교회부흥에 눈을 돌리는 바벨론 포로는 2600년 전에 유대인들 중에 하나도 없었다.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을 바라는 염원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속에서도 선교, 교회부흥, 무조건 통일을 추구하는 포로 또한 없어야만 한다. 단지 포로와 폐허의 채찍을 거두어 주시길, 그 분의 자비만을 바랄 뿐이다.
국내외의 한민족 모든 기독인과 그 교회들이여, 우리는 과연 무엇이며, 왜 이런 자리에 있는 지를 곰곰 생각코 “돌아 가서, 자비를 구하자”. 우리가 진정 조상, 선배들과 우리 자신들의 배교행위를 참회할 때에, 혹시라도 그 분께서 돌이키사 채찍을 거두어 주시지도 않겠는가? 참 신이신데, 자신의 정경에 명시한 약속을 부정하실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