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삶 – 신명기의 언약에 따른 저주를 벗어남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감 – 1부
I. 구원–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에베소서 2:8) – 칭의
문: 하나님의 은혜가 비참한 죄인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답: 로마서 10:9-10
1.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 선포하다.
2.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로마서 10:15).
3. 성령 하나님께서 선포된 복음을 통하여 듣는 사람의 마음 (영) 속에 믿음을 창조하시다.
4. 죄를 고백하여 회개하다.
5. 복음이 선포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죄인인 나를 위해 그분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믿다. 회개하는 나의 믿음의 대상은 오로지 예수님 뿐이시다. 죄에서의 구원을 나에게 선물로 거저 주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다).
6. “믿다”라는 동사는 “성령님께서 새롭게 창조한 영의 상태가 어떠한 지를 설명하는” 동사이다, 그 영이 하는 “어떤 행동”을 뜻하는 동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가져다 주신 “믿음”은 단지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복음이 나에게 선포될 때, 나는 성령님께서 가져다 주신, 거저 받은 믿음을 통하여 그 복음을 그대로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죄 용서함을 선물로 받는다. 즉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분의 의”가 하나님의 선물로 그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내 영에 전가되어 나의 “의”라고 하나님께서 여겨 주신다. 내가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때(칭의), 내 영의 믿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결단코 능동적으로 그것을 이룰 수도 없고, 그리하지도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 의롭게 여김을 받음).
7. 중생되고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거듭난, 용서받은 죄인으로 나를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신다. 이전에 아브라함에게도 동일하게 그리하셨다.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나타나 복음을 선포하신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창세기 12:1-3; 15:1-6; 로마서 4:3,9,10).
2부 —
8. 신명기 27-2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다: 레위 족속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큰 소리로 답하라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답에 두 산에(에발 산과 게라짐 산) 오른 각각 6지파 사람들이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아멘”으로 화답하게 명하셨다. 레위 자손들은 12가지 저주들을 큰 소리로 이스라엘백성에게 알려주고,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 자손들의 하나님께 대한 답에 “아멘”으로 화답케 하셨다. 또 레위 자손들은 15가지 복들도 선포하고, 이에 나머지 6개 지파사람들이, 레위 자손이 선포한 하나님의 계명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셨다. 약 40년 전에 자신들의 선조가 광야에서 시내산에서 야훼께서 자신들과 자손들을 대표하여 맺으셨던 언약의 갱신이다.
9.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우상숭배를 고수하는 개인에게 극심한 저주를 선포하셨다 (신명기 29:19-21).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이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언약의 저주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을까? 없다, 결단코! 사도행전 17:31-32에서 밝혔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이 무지한 가운데 저지른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크신 자비속에 눈 감아 주셨다. 그 결과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주신 믿음을 통해 구원 받기전까지도 살았었다. 그 언약의 저주 때문에 멸망 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이 생명을 선물로 받고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바벨탑의 사건 때에나, 노아 홍수의 사건 때에나, 롯이 살았던 소돔과 고모라 및 주변 도시들에 대한 갑작스런 멸망을 진행하시기도 하셨다.
10. 이스라엘 자손들도, 죄에 따른 저주로 타국에 포로생활을 할 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당연히 그들을 당신께서 흩으셔서 보내셨던 나라의 포로생활에서 풀어 주시사, 본국으로 돌아 오게 해 주신다. 하나님의 자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다시 상속받았던 땅에 돌아 와서 번성하며, 조상들보다 더하게 흥하게 하신다.
11. 신명기 30장 6절 말씀에 따라, 계명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야훼로 부터 큰 복이 내려질 것이다. 게다가 영적으로 복을 누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과 자손들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시사, 모두가 자신들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여 살게 하신다.
12. 모세는 마지막으로 다시금,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엄중한 경고와 약속을 하며 명령하였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서 너희에 대하여 증거로 삼아 내가 네 앞에 생명과 죽음, 보고가 저주를 두었은즉, 그러므로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할지니라. 너는 야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는 그분의 음성을 복종하며, 너는 그분에게 연합하라. (왜냐하면 그분이 네 생명이시요, 네 날들의 전부이시기 때문에) 야훼께서 네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들에게 주시기로 맹세하신 그 땅에서 네가 살게 되리라!”
13. 하지만 주님의 계명에 계속 우상숭배로 불순종할 시, 더욱 타락하여 온갖 죄를 짖도록 방치하시는 저주를 허락하신다 (로마서1:24, 26-28, 29-32).
성화의 삶 – 신명기의 언약에 따른 저주를 벗어남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 감 – 2부 (결론)
II. 구원과 재창조 – 은혜로 구원받아 선행 (에베소서 2:10) – 성화
제 1 문: 용서받은 죄인들이 선행을 하려 할 때 제일 큰 장애가 무엇인가?
답: 다니엘 9:3-19 (범죄로 언약의 저주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백성을 위해 자비를 간구하는 회개기도). 언약의 저주에 따른 고통이 온전히 복된 은혜의 생활로 바뀌는 자비를 위해 기도하다.
1.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이스라엘백성들의 범죄에 무한하신 자비로 오래 참으신다 (사도행전 14:16; 17:30-32; 출애굽기 33:19; 34:6-7; 신명기 5:8-10).
2. 다니엘의 회개기도 경우: 저주로 고통받는 언약 백성위해 자비를 간구하는 회개.
1) 메대제국의 사이러스왕에 의해 바빌론제국이 마지막 왕 벨사살의 재위시 멸망당했다 (B.C.538). 다니엘의 포로생활 68년이 지난 후였다 (B.C. 605-538). 다니엘이 그 정세의 변화를 보고 예레미야 선지의 70년 바빌론 유수생활에 대한 예언을(25:11-12; 29:10) 기억하였다. 그 말씀에 의거하여 언약의 저주로 인한 이스라엘의 바빌론유수를 끝나게 야훼께서 자비를 베푸시도록 다니엘이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다 (다니엘 9:16-19).
2) 사이러스왕이 칙령을 내려, 유대인 포로들에게 고국으로 돌아 가도록 자유를 허락했다. 왕족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느헤미야와 동료들과 함께 유대로 돌아가 예루살렘성과 성전의 제단과 성전토대를 재건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에스라 1:1-4; 2:2. B.C.537-536).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재건축이 모두 중지되었다 (에스라 4:24. B.C.536).
3) 역대하 7:14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언약백성을 향한 야훼의 용서를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시행하였다. 즉 언약백성을 위한 회개기도이었다 (다니엘 9:7-14).
3. 그 자비를 기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중생후에 제일 먼저 온전한 은혜의 생활을 위한 기도를 해야만 한다. 즉 조상들과 본인의 죄로 인한 언약의 저주에서 자유로워지며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길에 제일 큰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먼저, 개인과 가족의 육체적, 심적, 영적, 사회적, 국가적, 경제적 고통과 인간관계 및 개인과 가족력에 따른 불의한 성품, 성격, 악습과 다양한 죄들, 즉 자손 3,4대에 까지 미치는 언약의 저주와 그 잔재를 인지하기 위한 간구요, 그후에는 거기서 벗어 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은혜와 자비에 의거한 회개기도이다).
4. 우상을 숭배하며 살던 조상에게 내리신 언약의 저주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덕분에 우리에게서 모두 거두어 졌다. 그러므로 여전히 그 언약의 저주에 따른 잔재를 체험하고 살던 (로마서1:28-32; 갈라디아서 5:19-21)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두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최우선의 의무이다. 그리 할 때,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올바로 시작된 것이다.
5. 저주의 모든 잔재마저 삶에서 온전히, 혹은 부분적으로나마 사라져 버린 것을 어떻게 아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1) 긍정적인 면: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만나는 어려움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이유이며 또한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 또한 그분 만을 위해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형상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이 성화의 목적이기도 하다 (로마서 8:26-28; 갈라디아서 4:19). 그 과정은 모두 선행들로 이루어 진다 (갈라디아서 5:14). “성화”는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또한 유지된다.
2) 부정적인 면: 고통을 몸소 겪고 살아 가야만 한다. 이를 없이해 주십사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까지 그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 일단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은 후에는 설혹 무엇이든 잔재가 남더라도 매일 주님의 뒤를 따라 각자에게 지워 주신 십자가를 지는 삶의 일부로 여기고 감사하면서 기꺼이 그리고 온전히 기쁘게 살아 가게 된다.
6. 육체를 가지고 살아 가는 한, 죄인의 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는 모든 인류가 언약에 따른 직접적인 저주 아래에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언약백성 중에서 자신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닌 경우에도 저주나 그 잔재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특별한 이유와 목적을 위해서 라고 성경은 밝힌다:
1) 나면서부터 눈이 볼 수 없는 사람의 경우: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해 그러한 저주로 인한 고통을 허락하셨다 (요한복음 9:23, 17, 25, 30-32). 먼저, 예수님께서 선지자이시며, 의인이심을 드러내고, 종국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2) 사도바울 자신의 질병(육체에 허락하신 가시)에 대한 경우: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쓰신 바울도 선교사역을 하는 중에도 저주의 잔재로부터 오는 이 고통을 없이해 주시길 기도했다고 밝힌다. 바울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시기를 세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지만, 응답은 “저주의 잔재로서의 병을 그대로 몸에 간직하라!”이었다 (고린도후서 12:8-10). “8왜냐하면 이 일로 인하여 이것이 내게서 떠나도록 내가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하였으되, 9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도다. 왜냐하면 내 능력이 (너의) 약한데서 완전하여 지기 때문이라, 하셨느니라. 10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여 나의 연약한 것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연약한 것과 모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경을 즐거워 하나니, 왜냐하면 내가 약할 때 곧 강하기 때문이라.” 저주의 잔재로서 바울의 육체에 가시로 주어진, 즉 그의 약함에서 예수님의 능력이 그에게 온전해 지고 머물기 때문이다.
제 2 문: 용서받은 죄인의 삶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믿음”이 어떻게 일하는가?
답: 에베소서 2:10; 야고보서 2:18-26; 디모데후서 3:16-17. 믿음을 행위로 나타내는 실천이 따르며, 계속적으로 선한 행실을 통하여서 믿음이 더욱 자라게 된다.
1.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선을 행하며 살게 예정하셨다 (에베소서 2:10).
2. 입으로 고백한 믿음에 행위가 실천으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죽은 믿음). 반면에 행위를 실천함으로써 입으로 고백한 믿음을 나타낼 수 있다 (구원받은 믿음, 살아 있는 믿음). 아브라함이 입으로 고백한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외아들을 희생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랑으로써 외아들을 죽이는 행위로 실천되었다 (창세기 15:6; 22:2,16-18).
3. 하나님께 사랑받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눈에 보이지 아니 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써, 눈에 보이는 이웃사랑보다 더 큰 선행은 없다 (로마서 5:8; 요한복음 15:13; 요한1서 3:16). 이웃사랑은 모든 율법을 다 실천한 것이다. 그 완전한 모본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으심을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웃을 사랑하는 선행은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궁극적인 성화에로의 명령이기도 하다. 성화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그분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야만 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실천을 하게 되어 있다 (로마서 13:10).